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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성장, 용기, 그리고 자아)

by happycanvas 2025. 11. 9.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영화 포스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평범한 소녀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겪는 성장의 여정을 그린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이다. 영화는 단순한 모험담을 넘어, 자아의 상실과 회복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탐욕과 불안으로 가득한 세계 속에서 순수함을 지켜내는 치히로의 여정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낯선 세계의 문을 열다 — 순수함의 상실과 두려움의 시작

영화는 어린 치히로가 부모와 함께 이사 가는 길에 폐허처럼 보이는 터널을 지나며 시작된다. 그 너머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사는 세계가 펼쳐진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들어선 세계지만, 곧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 순간은 곧 ‘순수함이 세상에 의해 삼켜지는 순간’을 상징한다. 신들의 목욕탕이라는 공간은 자본과 욕망으로 가득 찬 사회의 축소판이다. 치히로는 어른들의 탐욕을 목격하며, 자신이 속한 세계의 불합리를 깨닫게 된다. 이 세계는 규칙과 계약, 이름과 노동으로 움직인다. 어린아이가 발을 디딘 순간부터, 그곳은 이미 현실의 은유가 된다. 치히로가 두려움을 견디며 노동을 선택하는 과정은, 단순히 생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립을 의미한다. 미야자키는 ‘판타지의 문’을 통해 현대인이 맞서는 공포 — 순수함이 사라지고 타인의 세계에 휘말리는 불안을 시각화했다.

이름을 잃은 소녀 — 정체성과 인간성의 회복

치히로는 유바바의 욕탕에서 일하기 위해 ‘센’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뜻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설정을 통해 ‘정체성의 상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이름 대신 역할과 기능으로 불리며 살아간다. 치히로 역시 ‘센’으로 불리며 점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잊어간다. 그러나 하쿠와의 관계를 통해 그녀는 기억을 되찾기 시작한다. 하쿠 또한 이름을 잃은 존재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는다. 이 과정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자기 인식의 여정’이다. 치히로는 두려움 속에서도 타인을 돕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할 줄 아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가 하쿠의 진짜 이름을 기억해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점이다. 이는 ‘기억의 회복’이자 ‘자아의 귀환’을 상징한다. 결국 영화는 이름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이 사회적 체계 속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시 돌아온 세계 — 성장과 자아의 완성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치히로는 부모를 되찾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처음의 치히로가 아니다. 두려움 많던 아이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할 줄 아는 존재로 변했다. 영화는 환상적인 세계를 배경으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성장의 서사’다. 치히로가 겪은 모든 일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내면적 변화다. 미야자키는 성장의 의미를 단순한 성공이 아닌 ‘두려움을 견디는 용기’로 정의한다. 치히로는 욕망의 세계를 통과하며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운다. 마지막 장면에서 터널을 빠져나올 때, 바람이 살짝 스쳐 지나가는 연출은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는 상징이다. 세상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탐욕스럽지만, 이제 그녀는 그 안에서 스스로의 이름을 지켜낼 줄 아는 존재가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결국 인간이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현실의 부조리와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면서도, 희망과 회복의 가능성을 잃지 않는 작품이다. 치히로의 여정은 한 개인의 성장담이자, 모든 인간이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내면의 여정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 과정을 ‘애니메이션’이라는 언어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