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이선균과 정유미가 부부로 출연한 한국 심리 스릴러 영화로,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수면장애의 공포를 그린다. 누군가가 잠든 밤마다 달라지는 남편의 행동, 그리고 그 변화를 지켜보는 아내의 두려움은 현실인지 악몽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괴물보다 무서운 ‘내 옆의 사람’을 그리며, 믿음과 불안 사이의 경계를 날카롭게 파고든다.
불안의 씨앗 — 잠들면 다른 사람이 되는 남편
영화의 시작은 극도로 평범하다. 신혼부부 현수와 수진은 첫 아이를 기다리며 조용한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어느 날 밤, 현수가 잠들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는 무의식중에 일어나 이상한 행동을 하며 “누군가 우리 집에 있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처음엔 단순한 몽유병으로 보이지만, 밤이 거듭될수록 그의 행동은 점점 폭력적이고 위태로워진다. 수진은 남편을 사랑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가 깨어 있을 땐 다정하지만, 잠들면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된다. 이 영화의 공포는 괴물이나 귀신이 아니라, 바로 그 ‘낯선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덧없을 만큼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균열이 생기고, 관객은 서서히 무너지는 관계의 긴장 속으로 빨려든다. 감독은 조용한 사운드, 반복되는 일상 동선, 미세한 표정 변화를 통해 불안을 극도로 압축시킨다. 공포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스며드는 방식이다.
신뢰의 붕괴 — 사랑이 의심으로 변할 때
〈잠〉의 중심에는 ‘사랑의 형태’에 대한 심리적 질문이 있다. 수진은 남편을 믿고 싶지만, 매일 밤 그 믿음이 흔들린다. 영화의 중반부에서 수진은 CCTV를 설치하고, 의사의 상담을 받으며 남편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날수록 불안은 더 깊어진다. 사랑했던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공포다. 수진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이야기 구조는 관객을 그녀의 심리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녀가 느끼는 불안, 죄책감, 그리고 모성의 본능이 뒤섞이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선균의 연기는 ‘정상과 광기’를 오가는 경계를 섬세하게 표현하며, 정유미는 공포와 사랑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을 절제된 얼굴로 담아낸다. 감독은 부부의 침대, 불 꺼진 거실, 아이의 방 같은 친숙한 공간을 통해 관객의 일상 속에 불안을 심는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은 정말, 옆에 있는 사람을 알고 있는가?”
무의식의 그림자 — 공포는 우리 안에 있다
〈잠〉은 초자연적 존재를 등장시키지 않으면서도 강렬한 공포를 만든다. 그 비결은 인간의 ‘무의식’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은 명확하지 않다. 현수가 정말 다른 존재에게 잠식된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 문제인지 끝내 확신할 수 없다. 바로 그 모호함이 영화의 핵심이다. 관객은 수진과 함께 진실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남는 것은 ‘불확실성’뿐이다. 이것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공포다. 불안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다.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수진의 시선으로 열린 결말을 제시한다. 잠든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엔 사랑도, 공포도, 체념도 아닌 복합적인 감정이 깃든다. 그 순간,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공포는 그가 아니라, 나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잠〉은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영화다. 우리는 누구나 깨어 있을 땐 이성적이지만, 잠들면 다른 존재가 된다.
〈잠〉은 공포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본질은 ‘심리극’에 가깝다. 현실의 불안, 사랑의 균열, 무의식의 그림자를 절묘하게 엮어내며, 관객에게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잠은 결국 두려움의 은유다 —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그 어두운 순간, 진짜 괴물은 밖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깨어난다.